[인터뷰] 릴리 조지 박사, ECO(지구시민연합) 뉴질랜드본부 교육이사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후손으로 사회인류학을 전공하고 지난 20여 년간 마오리 원주민의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춘 심신의 건강과 웰빙에 대해 연구해온 릴리 조지(Lily George) 박사. 메시대학 수석 연구원을 거쳐 타라나키 과학기술대학 연구 책임자가 되었다. 4년 전 한국發 뇌교육을 접한 이후, 마오리족 청소년 자살 방지 프로그램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릴리 조지 박사는 현재 ECO(Earth Citizens Organization, 지구시민연합) 뉴질랜드 본부의 교육이사를 맡아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다음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정리한 내용이다.
2017년 1월 뉴질랜드 케리케리시에서 ECO 주최 <제1회 지구시민 평화 페스티벌>에서 박사님 발표를 들었다. 마오리족 청소년의 자살 방지 프로그램에 뇌교육을 접목하며 만들어진 성과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트라우마가 어떻게 몸에 축적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이해하는데 기본 바탕이 된다”며 뇌교육이 몸에 축적된 고통을 인식하고 해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소개했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가?
‘코키리티아 테 아로하Kokiritia Te Aroha’라는 프로젝트인데, 마오리어로 ‘사랑을 전달한다’라는 뜻이다. 나티와이Ngātiwai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 향상과 정신 건강 프로그램이다. 나티와이 신탁 자금의 지원으로 2015년 1월에 1단계를 시작했다.
우선 자살을 비롯해 청소년들이 당면한 삶의 문제가 무엇인지 연극이나 미술 등을 통해 스스로 표현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리더십, 유대감, 힐링 세 가지 테마를 청소년 삶의 주요 문제로 범주화하고, 2단계에서는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 가운데 하나로 뇌교육 워크숍을 열기 시작했다.
뇌교육에서 사용한 방법은 아주 간단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전신을 가볍게 두드리거나 캥거루처럼 뛰는 동작 같은. 이러한 간단한 신체의 움직임으로 참가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도 뇌교육은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몸에 집중하면서 고통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도왔다.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정서적 · 정신적 고통이 정상의 상태로 인식돼왔을 정도였다. 성인이 되면 삶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체험하는 고통을 먼저 바라볼 수 있어야 그것을 극복하고 회복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2017년 지구시민 평화 페스티벌에 참석했던 청소년 그룹과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 5년째 함께하고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어온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를 힐링하고 삶의 방향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 그 친구들은 자신이 가진 내면의 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축적해온 많은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이제 3단계에 접어들었다. 3단계는 2단계에서 시도한 방법들의 효과성을 평가하고 다른 마을과 부족, 전국에 확산할 수 있도록 툴박스toolbox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누구나 정신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이제 뇌교육이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도구로 확산될 수 있게 됐다.
젊은 세대의 자살률 증가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얼마 전 뉴질랜드 정부는 정신병 치료에 전체 예산 중 가장 큰 금액인 19억 뉴질랜드 달러(약 1조 4738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고 발표했다. 자살을 예방하고 정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뉴질랜드 정부가 육체적 건강과 정서적, 영적 건강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웰빙을 강조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재정적 규모를 늘리는 것만으로 자살률이 낮아지기는 힘들다. 정부가 지난 10여 년간 수백만 뉴질랜드 달러의 예산을 자살 예방과 자살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마오리족 젊은이들의 자살률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
자살을 ‘정신적 질병mental illness’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문제다. 자살예방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자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와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가 어떻게 젊은이들, 특히 마오리족의 희망을 파괴하고 가능성을 억압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나에겐 미래가 없다’라는 무력감을 갖게 했는지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살률에 변화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뇌교육이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가?
기술적인 얘기보다 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내 체험에 기반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유대감connection’에 대한 것이다. 내가 처음 오클랜드 바디앤브레인센터에서 수련을 시작했을 때 내 신체 나이가 79세로 측정됐다. 실제 나이는 53세였는데, 건강이 많이 안좋았다. 그런데 수련을 하면서 체중도 많이 줄고 건강이 좋아졌다. 아쉽게도 10개월쯤 후 센터가 없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돼 그 대신 비슷한 타이치 클래스에 갔다. 클래스마다 12~15명 정도 참석하곤 했는데, 이전에 바디앤브레인센터에서 느꼈던 그런 상호작용 같은 게 없었다. 바디앤브레인센터에서는 우선 지도자가 회원들을 돕기 위해 서로 연결하고, 이어서 회원들 간에 서로 돕고자 연결하는 그런 공동의 에너지 장에 있게 된다. 그러한 연결과 유대감, 격려와 사랑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하다.
또 하나는 ‘가능성potential’에 대한 것이다. 뇌교육에서는 우선 자신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못한 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단계 더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능력ability’을 자신 안에서 발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내게 한다.
최근 트라우마 극복과 정신 건강 증진을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와이카레Waikare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했다. 이 마을의 테 카포타이 부족들이 건강한 삶에 대한 열망을 내면에서 발견하고 스스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작하게 됐다. 예전부터 이 마을에서 열어온 뇌교육 클래스에 참석했던 마을 주민들이 ‘즐거운 고문joyful torture’이라면서 아주 효과적이고 재미있는 수업으로 다른 주민들에게 입소문을 내고 있어서 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100명 정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뇌교육 클래스가 열리게 될 마을회관marae은 마오리족의 세대 간 유대감을 회복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최근 마오리족의 세대 간 단절이 큰 이슈가 되고 있는데,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젊은이들의 자살 문제 해결에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마오리족 마을들은 19세기 식민지시대부터 축적된 트라우마가 여러 세대에 걸쳐 몸에 축적돼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들의 트라우마와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다. 과거로부터의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트라우마를 치유함으로써 이 트라우마가 세대를 이어 연속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거치면서 왜곡된 민족적 정체성이 지금까지도 많은 문제가 되고 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문화의 가치를 인식하고 건전한 정체성을 갖는 것은 젊은 세대의 정신 건강과 자존감 향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어렸을 때 학교에서 마오리족 언어를 사용하면 체벌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1925년 무렵에는 마오리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5퍼센트 정도로 줄어들었다. 다행히 지금은 25퍼센트까지 늘어났다.
언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마오리족으로서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자신의 뿌리인 마오리족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자라게 되면 자신이 어떠한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고, 그저 단순 노동이나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돼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게 된다. 그래서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별로 없게 된다.
나도 그렇게 자랐다. 내 삶이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게 다양한 방식으로 “나는 너를 믿어, 나는 너의 가능성을 믿어. 나는 너를 돕기 위해 항상 여기 있어”라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젊은 친구들에게도 필요하다. “나는 너희를 믿는다. 너희를 돕기 위해 우리가 여기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젊은이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유대감을 회복하면서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마오리족 젊은 친구들이 앞으로 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기를 바라는가?
마오리족 연구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메이슨 듀리Mason Durie 교수의 말을 빌면, 우리는 마오리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해야 하지만 동시에 세계 시민으로서 종족이나 인종, 문화적으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도와야 한다. 건강한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나 자신의 삶과 내가 속한 나라, 전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서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과 능력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구시민Earth Citizen의 의미와 비슷하다.
많은 문화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잃어버린 개념 중 하나가 봉사 정신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 공동체, 그리고 지구와의 긍정적 관계를 회복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고 싶어 한다. 관계 회복의 핵심이 봉사 정신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국의 벤자민인성영재학교와 ECO가 폭넓은 교류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학생들은 1년 동안 지역사회와 인류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고 들었다. 마오리족 청소년들과 앞으로 교류하면서 서로 성장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정리. 김지인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팀장 prmir@ibrea.org | 사진 제공= ECO
(이 글은 《브레인》 78호에 실렸습니다. www.brainmedia.co.kr)